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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그리고 사랑

이제 막 시작된 두 사람의 마음도 헤어짐이라는 다가올 숙명 앞에 풍전등화처럼 놓여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겨우 서로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지만 끝이 있다는 것을 유난히 잘 알고 있는 사람들로서 하루하루 애잔함과 두려움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두려움이 너무 앞서버리면 지금 이 순간조차도 온전히 누릴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뜻대로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는군요. 너무 계몽적인 얘기가 되지는 않기를 바라지만 어쨌든 용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엄청난 강박과 강방의 충돌이었습니다. 감정의 종말에 대한 너무도 거대하고 확신에 찬 두려움을 갖고 있는 남자와 아무도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해주지 않을 거라는 극심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여자의 만남. 여자의 관심은 상대가 자신에게 줄 상처가 얼마나 될 것인가를 가늠해보는 데에 온 신경이 쏠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했고 그의 과거 연애행태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과거의 사례들을 묻고 또 물어서 그것을 데이터화하여 판단하려 합니다. 이 남자에게 어디까지 내 마음을 주어야 할까. 얼만큼만 좋아해야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럴 땐 이렇게 해야 다치지 않을 수 있겠구나. 등등. 모든 것은 결국 상처받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한 가지 물어봅시다.

사랑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겁니까?

아니면 사랑해서 하는 겁니까?"


"정말 몰라서 물어보시는 거계요?

당연히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하는 거지요.

전 결코 상처받지 않는 것, 두려움 속에 자신을 지키려는 것이

사랑에 자신을 던지는 거보다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상처는 사랑보다 몇 배나 더 크고 오래 가니까.

사랑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더 그러하니까."


... (중략)


그러나 종말과 상처에 대한 이 모든 확실하고 불안하며 어두운 전망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아랑곳없이 피어납니다. 씨앗이 바람을 타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어디라도 날아가 생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압벽 틈이나 낭떠러지 위에서까지 얼마든지 꽃을 피우듯, 사랑은 그렇게 어디서든 피어납니다. 원하는 원치 않든 일단 시작되고 나면 누구든 바로 모든 사랑의 단계 중에서 가장 황홀하고 아름다운 '처음'의 순간을 피할 수 없게 되죠. 



- 보통의 존재 p. 77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을 수 있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입니다. 무엇이든 사랑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은 분명 아픔을 느낄 것이며 어쩌면 부서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아무 손상 없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다면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 네가지 사랑 




그동안 무얼가지고 그렇게 힘들어했나 생각해보면, 결국 대화였다.

대화는 표면적으로 다양한 주제에 관해 오고갔지만

내면에 깔려있던 공통의 주제는 "신뢰"였다. 


내가 널 믿어도 되겠니?


사람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는 언제 곧 깨어질지 모르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다.


믿을 만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믿는 것이다.

물론, 믿을 만한 사람을 사랑해야 해야 덜 상처받는다는 꼬리를 붙인다면 

궤변이라고 할까?


하지만 사랑해서 "믿는 대상"은 

타인 뿐이 아니다.

나 스스로도 그 대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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